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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의 시작과 끝

by 사학전공자 2025. 6. 20.

고려거란전쟁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려가 어떻게 국난을 극복했는지 궁금하신가요? 고려거란전쟁은 10세기말부터 11세기 초까지 고려와 거란(요나라) 사이에 세 차례에 걸쳐 벌어진 대규모 전쟁으로, 고려는 서희, 양규, 강감찬 등 영웅의 활약으로 국토를 지키고 국제적 위상을 높였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면 고려거란전쟁의 전개 과정, 주요 전투, 그리고 전쟁이 남긴 역사적 의의까지 한눈에 정리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려의 위대한 승리와 그 의미를 알고 싶다면 꼭 끝까지 읽어주세요! 

 

 

목차

     

    1. 이 글을 읽으면 알 수 있는 정보

    - 고려거란전쟁의 3차례 전개 과정과 주요 인물

    - 각 전쟁의 승패와 전략적 의미

    - 고려거란전쟁이 남긴 역사적 영향

     

    2. 제1차 고려거란전쟁: 서희의 외교와 강동 6주

    993년, 거란(요나라)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며 제1차 고려거란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려는 초반에 봉산군을 잃었으나, 안융진에서 방어에 성공하고, 서희가 외교 담판을 통해 전쟁을 종결시켰습니다. 서희는 거란의 요구를 막아내는 동시에, 압록강 동쪽 강동 6주에 대한 고려의 영유권을 인정받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고려는 실질적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국방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3. 제2차 고려거란전쟁: 강조의 정변과 양규의 활약

    1010년, 고려 내부의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거란은 4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침공했습니다. 흥화진 전투에서 양규가 거란군을 막아냈으나, 거란군은 개경까지 진격하여 수도가 함락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현종이 남쪽으로 피난하며 시간을 벌었고, 후방에서 양규와 고려군이 거란군을 계속 공격해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결국 거란은 강화에 응하고 철수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포로가 구출되었습니다.

     

    4. 제3차 고려거란전쟁: 강감찬과 귀주대첩

    1018년, 거란은 소배압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다시 대규모 침공을 감행했습니다. 강감찬은 상원수로 임명되어 흥화진에서 수공작전과 매복으로 거란군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이어 귀주에서 벌어진 귀주대첩에서 강감찬은 거란군을 완전히 격파하였고, 거란군은 겨우 수천 명만 살아 돌아갈 정도로 참패했습니다. 이 승리로 거란은 더 이상 고려를 침공하지 못했고, 고려의 국제적 위상은 크게 높아졌습니다.

     

    5. 고려거란전쟁의 결과와 역사적 의의

    고려는 거란을 물리치며 강동 6주와 천리장성을 쌓아 국방력을 강화했고, 송나라-거란-고려의 세력 균형에서 국제적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전쟁 후에는 평화가 구축되면서 제도와 문물이 정비되었고, 문벌귀족이 군사권까지 장악하는 사회 변화가 이어졌습니다. 거란의 약화로 여진족이 성장해 이후 금나라가 등장하는 등 동북아 질서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차수 연도 주요 인물 주요 전투/사건 결과 및 의의
    1차 993년 서희 외교담판, 강동6주 획득 영토확장, 외교적 승리
    2차 1010년 양규, 강조 흥화진, 통주전투 개경 함락, 포로 구출, 거란 철수
    3차 1018~1019년 강감찬 흥화진, 귀주대첩 거란 대패, 고려 국방력,국제적 위상 강화

     

     

    6. 맺음말

    고려거란전쟁은 고려가 외교와 군사, 그리고 민족의 단합으로 국난을 극복한 위대한 역사입니다. 이 글을 통해 고려거란전쟁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과 의의를 명확히 이해하고,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시길 기대합니다.